정부 지원에도 회복 기미 없는 필수과 기피…“필수의료 시스템 자체가 무너졌다”

김미경 기자 / 기사승인 : 2025-12-19 08: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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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수련보조수당 확대, 공공정책수가 인상 등 여러 보상책을 시행해왔지만, 현장에서는 “보상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료를 떠받치는 구조 자체가 붕괴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진=DB)

 

[mdtoday=김미경 기자] 소아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외과 등 필수 진료과 전공의 지원률이 여전히 회복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수련보조수당 확대, 공공정책수가 인상 등 여러 보상책을 시행해왔지만, 현장에서는 “보상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료를 떠받치는 구조 자체가 붕괴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법 리스크, 인력 공백, 경험 전승 체계 약화가 서로 얽히며 전공의의 선택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이경원 교수는 정부의 최근 지원 정책이 의미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과거에는 없었던 수련보조수당과 교육지원수당이 신설·확대됐고, 정부가 필수과 인력난을 인식하고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공의들이 필수과를 선택하지 않는 핵심 이유를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사법 리스크’를 첫 번째로 꼽았다. 실제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대동맥박리 환자를 놓쳤다는 이유로 10년간의 소송을 거쳐 결국 면허가 취소된 사례도 있다.

이경원 교수는 “전공의들도 필수과 지원을 기피하는 이유로 사법 리스크를 가장 먼저 이야기한다”며 “정부가 지원하는 수련 보조 수당과 교육 지원 수당만으로는 언젠가 면허가 날아가고 억대 배상에 처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균형이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단체나 환자단체들은 ‘사법 리스크 건수는 적다, 의사들이 엄살을 부린다’고 말하는 데, 불과 몇 년 의사생활을 한 전공의가 그런 일을 겪는 순간 삶 전체가 무너질 수 있어 가볍게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며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필수과를 선택하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응급의료 특성상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도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상황들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행위까지 형사 기소 대상이 되는 현실을 가장 큰 부담으로 지적했다. 

 

그는 “응급의료 분야만큼은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가 없는 경우에는 기소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대한 과실의 기준에 대해서는 “해외에서는 의사가 마약 투약 후 진료해 문제가 생기는 정도가 아니면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했는데 과실이 발생한 데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최선을 다한 상황에서도 기소해 형사처벌로 이어지고 면허를 잃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민사 책임도 전공의와 전문의에게 큰 부담이다. 이 교수는 “어떤 소아과 선생님은 10억 배상 판결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대학병원·종합병원 전문의 월급이 그렇게 높은 구조가 아니다”며 배상액 상한 설정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실 사법 리스크 문제는 정부가 아닌 국회의 입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데, 입법을 논의할 때마다 환자단체의 반대와 여론 부담이 반복되고, 이렇게 시간을 끌면 어느 순간 ‘면책을 해 준다 해도 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 도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또한 수련보조수당·교육지원수당 확대가 “방향은 옳다”고 평가하면서도, 전공의뿐 아니라 전임의(펠로우)에게도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전임의는 전문의로 성장하는 결정적 시기인데, 사법 리스크는 그대로인 상황에 보상은 낮아 현실적 괴리가 크다는 설명이다.

응급의학과의 지원률은 현재의 불안정한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올해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률은 정원 158명 중 56.3%에 그쳤다.

이 교수는 “과거에는 매년 150명이 지원해 수련하던 과였지만 지금은 100명도 되지 않는다”며 “내가 50대 중반인데 앞으로 몇 년이나 당직을 설 수 있겠나. 후학은 들어오지 않고, 젊은 의사들은 응급의학과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며 심각한 인력 공백을 우려했다.

필수의료의 기반이 흔들리는 또 다른 축은 고숙련 전문의의 급격한 감소다.

대한소아청소년병원협회 최용재 회장은 진료가 막히는 상황에서 방향을 잡아줄 숙련된 의사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진료가 막다른 상황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이끌어줄 사람이 없어졌다”며 이를 “위기 순간 진료실에 신(神)이 없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고난도 술기와 임상 판단을 전수할 축이 약화되면서 후배 의사들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지식과 경험의 기반이 붕괴된 상황에서 원인을 따질 단계는 지났고, 이제는 어떻게 다시 세울지를 논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진단은 서로 다른 지점을 가리키지만, 필수의료의 취약성이 한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숙련 전문의가 줄어들면서 경험 전승 체계가 약해지고, 전공의는 사법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감수할 이유를 찾지 못해 지원을 망설인다. 전공의가 줄어들면 미래의 고숙련 전문의를 키울 수 있는 기반이 더욱 약해지고, 이는 다시 필수과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사법 리스크, 경험 단절, 보상 불균형이 겹쳐 필수의료 전체가 구조적으로 취약해지는 흐름이 고착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부는 수가 개편을 통해 필수의료 보상체계를 재정비한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일 ‘상대가치운영기획단’ 첫 회의를 열고 의료비용 분석 기반의 상대가치점수 상시 조정을 논의했다. 저보상된 필수과 수가는 강화하고, 왜곡된 구조는 조정해 필수의료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복지부는 “의료현장의 변화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보상 확대로는 현재의 악순환을 멈추기 어렵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필수의료의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는 사법 리스크, 고숙련 인력 감소, 교육 체계 붕괴가 서로 연결된 구조적 문제로 작동하며 전공의 선택을 지속적으로 제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력 기반이 이미 취약해진 과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제약이 누적될수록 회복 가능성이 더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필수의료의 지속성을 보장하려면 단기적 보상 강화에 머무르지 않고, 위험 부담의 합리적 조정과 전문역량을 재생산할 수 있는 생태계 복원이 동시에 추진될 필요가 있다.

 

메디컬투데이 김미경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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