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 20개월, 재정은 소진됐고 신뢰는 무너져

김미경 기자 / 기사승인 : 2025-12-29 0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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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지난 10월 20일 0시부로 비상 진료 체계를 종료하면서 20개월간 이어진 의정 갈등이 일단락됐지만, 의료 현장은 회복보다 손실이 더 선명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DB)

 

[mdtoday=김미경 기자] 정부가 지난 10월 20일 0시부로 비상 진료 체계를 종료하면서 20개월간 이어진 의정 갈등이 일단락됐지만, 의료 현장은 회복보다 손실이 더 선명한 상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공백이 지속되면서 환자의 수술·진료 지연 및 취소 사례가 증가하고 119 구급대가 이송하는 환자를 응급실에서 받기 어려워 다른 병원으로 재이송하는 ‘응급실 뺑뺑이’가 증가하는 등 환자의 불편은 증가했고, 약 20개월간의 비상 진료 체계 유지를 위한 수가 신설·인상 등에 약 2조원에 가까운 건강보험 재정이 추가로 투입됐다.

이번 갈등으로 인한 정부와 의료계의 상호 신뢰 저하 문제는 지난 2년 가까이 중단된 의료 개혁의 주요 과제를 다시 추진하고, 지역·필수·공공의료를 살리기 위해 해결해야 할 선행 과제로 남아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4년 2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20개월간 이어졌고, 그동안 누적되어 온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의 쟁점을 분출시킨 이번 갈등의 진행 경과를 되짚어 보고, 보건의료 체계에 미친 영향을 검토하며, 의료 현장과 의사 인력 양성체계의 정상화를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자 현안 분석 보고서 ‘의정 갈등 20개월이 보건의료 체계에 남긴 과제’를 최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비상 진료 체계 유지를 위해 각종 수가 인상과 지원금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대거 투입했다.

2024년 2월부터 2025년 7월 말까지 투입된 추가 재정은 총 1조8873억원에 달해 월평균 약 1049억원이 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비상 진료 건강보험 수가 한시 인상으로 도입된 중증·응급 관련 가산 수가 중 일부가 정규 수가로 전환되어 상시화되면서 ‘비상 진료 건강보험 지원’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점과 비상 진료 체계가 지난 10월 19일까지 지속된 점을 고려한 최종적인 건강보험 재정 지출 규모는 이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재정 투입에도 의료 질 하락은 막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인 2024년 2월부터 7월까지 상급종합병원의 고난도 수술 건수는 전년 대비 19% 감소했다.

같은 기간 1·2차 의료기관의 수술 건수가 일부 증가했지만,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중증 환자의 수요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4년 2월부터 7월까지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청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고난도 수술 청구 건수는 33만3825건에서 30만2072건으로 10% 감소했다. 암 수술 건수도 7만5881건에서 7만2619건으로 4% 줄었으며, 상급종합병원에서는 1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의료인력 양성체계의 붕괴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는데, 의대생 집단 휴학이 2025년 2학기 복귀로 이어지면서 2024년과 2025년 신입생이 동시에 수업을 듣는 ‘더블링’ 현상이 현실화했다.

이에 따라 2024년과 2025년 신입생 모집인원을 기준으로 각각 3058명과 4567명을 합한 약 7500명이 기존 정원의 2.5배 규모로 동시에 6년간 예과와 본과 교육을 동시에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보고서는 특히 본과 과정은 1·2학년의 교내 실습과 3·4학년의 임상실습이 포함되어 있고, 총 52주 이상을 채워야 하는 임상실습은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된다는 점에서 ‘더블링’ 학년의 실습 과정이 충실히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우려했다.

증원 규모가 컸던 주요 지방 국립대 의과대학의 임상실습 주수가 최소 기준인 52주에서 56주 등으로 편성되는 등 다른 의과대학에 비해 짧아 향후 실습의 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 바 있다.

의사 배출 공백 역시 현실화하고 있다.

2025년 제89회 의사 국시 실기시험 응시자는 전년 대비 88.2% 감소한 382명에 그쳤고, 2026년 1월 시행 예정인 제90회 실기시험 응시자도 1186명에 불과해 2025년과 2026년 배출될 신규 의사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연쇄적으로 전공의 모집 규모에 영향을 미칠 예정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필수 의료인력 확충 성과도 미흡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5년 하반기 전공의 모집 결과, 전체 충원율은 회복세를 보였지만, 필수과 기피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13.4%에 그쳤고, 심장혈관흉부외과 21.9%, 외과 36.8%, 응급의학과 42.1% 등 필수 의료 과목 전반에서 낮은 지원율이 이어졌다.

지역 간 격차도 지속돼 수도권 전공의 모집률은 63.0%였지만, 비수도권은 53.5%에 머물렀다.

보고서는 이번 사태가 남긴 가장 큰 상처로 의료계와 정부 간 ‘신뢰 붕괴’를 꼽았다. 특히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선포 당시 포고령에 포함된 ‘미복귀 전공의 처단’ 표현은 의료계를 통제 대상으로 인식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임사무엘 입법조사관은 “계엄포고령 사태가 병원협회 등 온건 성향 단체들마저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고 지적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향후 과제로 의대 교육 여건의 시급한 확충, 전공의 수련 환경의 실질적 개선, 신설된 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한 과학적 정책 근거 마련을 제시했다.

임 조사관은 “의료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료 공급자와의 신뢰 회복뿐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디컬투데이 김미경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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