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 줄어도 삶은 무너진다…뇌전증, 국가 관리 시스템 개입 필요”

김미경 기자 / 기사승인 : 2026-02-11 0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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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6 세계뇌전증의날 기념식 및 세미나에서 황경진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김미경 기자)

 

[mdtoday=김미경 기자] 뇌전증은 약물 치료로 발작이 조절되는 경우가 많지만, 상당수 환자는 여전히 학업과 취업, 일상생활에서 배제된 채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발작 자체보다 우울·불안, 낙인, 직업 단절 등 동반 문제가 환자의 삶의 질과 예후를 좌우하는 만큼, 관리 체계를 발작 중심에서 ‘삶의 회복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뇌전증협회는 10일 세계뇌전증의날을 기념해 한국프레스센터에서 ‘2026 세계뇌전증의날 기념식 및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경희의료원 신경과 황경진 교수는 “뇌전증은 발작의 병이 아니라 개인별 동반질환이 삶의 질과 장기 예후를 결정하는 만성 질환”이라며 “의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국가 시스템이 개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발작이 줄어들어도 우울과 불안, 사회적 고립으로 학교나 직장을 다니지 못하는 환자가 많다”며 “발작 중심 관리만으로는 환자의 삶의 회복을 담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해외 조사에 따르면 뇌전증 환자는 일반인 대비 우울 위험이 2.45배, 불안 2.11배, 자살사고 2.25배, 자살시도 3.18배, 알코올 의존성은 4.9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연구에서도 뇌전증 환자의 우울·불안 유병률은 30~50%로, 일반 인구 대비 2~3배 수준이다.

특히 발작이 잘 조절된 환자에서도 우울과 불안은 지속되며, 삶의 질을 가장 강하게 예측하는 요인은 발작 빈도가 아니라 우울 증상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그러나 현 진료 체계에서는 정신건강 선별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증상이 있어도 ‘질환 탓’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황 교수는 “발작만 보는 진료는 환자의 절반을 놓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사회적 낙인과 차별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국내 연구에서 뇌전증 환자의 약 31%가 낙인을 경험했고, 이 중 9%는 심한 낙인을 지속적으로 느낀다고 응답했다.

낙인 경험은 취업과 대인관계 회피, 질환 은폐로 이어졌으며, 67.3%의 환자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뇌전증을 거의 또는 전혀 알리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민 대상 조사에서는 자녀가 뇌전증 환자와 결혼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2.2%에 달했고, 뇌전증 환자는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응답도 57.2%에 이르렀다.

황 교수는 “낙인은 특정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공통의 뇌전증 문제”라며 “차별과 낙인은 우울·불안을 악화시키고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켜 치료 성과와 사회적 예후를 직접적으로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취업 문제 역시 구조적 문제로 지목됐다.

국내 성인 뇌전증 환자 543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실업률은 31%로, 동일 연령대 일반 인구보다 현저히 높았다. 발작이 비교적 잘 조절되는 환자군에서도 실업률이 높게 유지돼, 의학적 상태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뇌전증이라는 질환 자체가 고용 과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해 발작 위험에 대한 과도한 우려, 고용주의 편견, 직무 배치 제한, 보험·안전 규정 등이 취업 기회를 제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많은 환자는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라며 “직무 조정과 고용주 교육만으로도 직무 유지율은 유의하게 개선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직이 우울로 이어지고, 치료 중단과 발작 악화로 연결되는 악순환은 응급실 방문과 입원 증가, 장기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직업 관리는 복지가 아니라 치료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책적 관점에서 조기 개입 비용보다 방치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며, 국가 개입은 비용이 아닌 장기적 투자라고 평가했다.

황 교수는 끝으로 “뇌전증 관리 체계는 발작 중심에서 삶의 회복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며 “동반질환 정기 평가, 정신건강 선별 및 치료 연계, 차별·낙인 대응 체계, 직업 유지 및 복귀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메디컬투데이 김미경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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