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인정범위 협소해 태아산재법 무력화”
남성 근로자 유해요인 노출 배제 문제도 해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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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아산재법 시행을 두 달여 앞둔 상황에서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시행령안이 규정하는 유해인자가 협소해 구제 문턱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DB) |
[mdtoday=이재혁 기자] 내년 1월부터 임신부 근로자의 업무적 환경으로 인해 선천적으로 건강손상을 입은 자녀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보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태아산재법’ 시행된다.
그런데 제도 시행을 두 달여 앞둔 상황에서 하위법령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쟁점은 정부가 마련한 시행령에서 규정하는 유해인자가 협소해 구제 문턱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건강손상자녀에 미치는 유해인자를 규정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의견수렴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올해 1월 11일 개정된 산재보험법에는 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이 신설됐다. 이는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업무상 사고나 유해인자의 취급‧노출로 인해 출산한 자녀에게 부상‧질병‧장해가 발생하거나, 그 자녀가 사망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본다는 내용이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해당 개정법은 대통령령으로 건강손상자녀에 미치는 유해인자를 정하도록 위임했으며, 고용부는 입법예고한 시행령을 통해 ▲생물학적 유해인자 ▲약물 유해인자 ▲화학적 유해인자 ▲물리적 유해인자 등 35개 유해인자와 함께 ▲그 외 자녀의 건강손상과 의학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유해인자(포괄 규정)를 제시한 것.
그러자 일각에서는 시행령에 명시한 유해인자의 범위가 너무 협소해 모법을 무력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반올림을 포함한 24개 단체는 고용부의 입법예고 직후 입장문을 통해 “태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알려진 화학물질은 1000가지가 훌쩍 넘는데 고용부의 시행령에는 이 중 단 17가지만이 담겼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의학적 연구가 있는 유해요인을 담았다고는 하지만 고용부는 태아산재에 대한 인간 대상 의학적 연구가 이뤄지기 어려워 많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정확히 말하면 고용부는 시행령을 협소하게 만드는데 의학적 기준을 동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단체는 “태아산재법은 자녀의 건강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인자에 노출되돼 자녀의 건강손상이 초래됐다면 산재로 보호하겠다는 법”이라며 “법의 취지에 맞게 고용부가 제시하는 단 몇 가지 유해요인이 아니라 자녀의 건강손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수많은 유해요인이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시행령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해인자 선정은 불가피했으며, 이에 대안으로 포괄규정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관련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행령의 유해인자를 담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능성만 가지고 선정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산부인과, 직업환경의학과, 산업위생분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 연구결과와 대한직업환경의학회 및 한국산업보건학회 전문가의 검토를 반영한 것으로 그간 국내·외에서 선천성 기형과 의학적 연관성이 밝혀진 연구결과(의학적 근거) 등을 바탕으로 건강손상자녀 유해인자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포괄규정을 둬 시행령에서 명시한 유해인자가 아니더라도 추가적으로 관련성이 인정되는 유해인자는 포함하도록 했다”며 “앞으로 실제 산재 신청이 이뤄져 조사를 진행하고, 관련성이 더 밝혀진다면 유해인자들을 더 추가해 규정을 넓혀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해명에도 높아지는 문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한 상황. 반올림 상임활동가 조승규 노무사는 “일부를 선정하고자 분류를 한 것이지 배제된 물질들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어서 뺀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고용부가 제시한 포괄규정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조 노무사는 “이미 시행령에서 규정한 유해인자의 선정기준이 의학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였고, 연구를 제대로 했다면 현재 17개가 전부”라며 “여기에 다시 의학적 기준에 따른 포괄 규정을 만들었다는 건 말이 포괄규정이지 사실상 기회의 문을 닫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꼬집었다.
시행령을 둘러싼 논란 이외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아있다. 산재보험법에서 어머니의 태아산재만 인정하고 아버지 태아산재는 배제했다는 점. 산재보험법은 인정기준 적용 대상을 ‘임신 중인 근로자’로 규정했기 때문에 아버지인 남성 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건강손상을 포함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삼성전자 LCD공장에서 일했던 남성 노동자 A씨의 자녀가 2008년 희귀병을 갖고 태어난 사례가 있었다. A씨는 지난해 12월 1일자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임신 시점을 고려했을 때 업무과정에서 독성물질에 노출돼 자녀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며 “산재보험법 개정 이후에도 태아 산재로 고통받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연대본부는 “산재보험법은 성별을 막론하고 부모의 업무에서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을 모두 산재보험으로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서는 이미 보완 입법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지난 9월 28일 반올림과 함께 마련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해당 개정안은 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 조문의 ‘임신 중인 근로자’를 ‘근로자’로 변경, 아버지의 유해요인 노출로 인한 태아산재도 산재보험으로 보호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기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던 유해인자 인정기준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태아나 자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해성‧위험성이 있다고 분류된 유해인자, 또는 이와 유사한 특성이 있는 유해인자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다.
우원식의원실 관계자는 “지금의 방식대로라면 근로복지공단은 법령과 시행령, 시행규칙의 범위 내에서만 판단을 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의학적 판단도 있겠지만 행정적인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 공단은 법에서 위임받은 권한만 행사하다 보니 법에서 제한적으로 나열된 범위 내에서만 판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학적 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우선은 범위를 열어두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의사 등과 함께 질병을 판정하는 과정에서 판단하면 되지 않겠냐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메디컬투데이 이재혁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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