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today = 양정의 기자] 정부의 약가 인하 기조가 가속화되면서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제약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여력 사이의 해묵은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재정 효율화를 위해 약값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수익성 악화가 곧 신약 개발을 위한 자금줄 차단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이번 논쟁은 정부와 업계가 추산하는 산업적 타격 규모의 격차가 커지면서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 업계는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이 시행될 경우 연간 최대 3조6000억원 규모의 산업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4년간 1조원 안팎의 재정 절감 효과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로, 업계가 체감하는 압박이 정부의 논리보다 훨씬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2024년 기준 급여의약품 약품비가 26조8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제네릭 가격 산정 구조의 변화는 기업의 현금흐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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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주요제약사 |
국내 제약산업의 R&D는 상당 부분 기업 자체의 현금흐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제약 부문 연구개발비는 4조1748억원으로 바이오헬스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매출 대비 연구개발 비중인 연구개발집중도는 7.9%에 달한다.
약가 인하로 인한 수익성 감소가 단순한 회계상 손실을 넘어 신약 파이프라인의 속도와 범위를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모든 기업이 동일한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대형 제약사의 경우 수출이나 기술이전, 신약 포트폴리오를 통해 충격을 흡수할 여력이 있으나, 내수와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중소 기업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직결될 수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24년 제약 부문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이 10.5%를 기록하며 아직은 투자 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는 산업 평균치에 불과해 개별 기업이 느끼는 압박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주요국들은 약가 통제와 동시에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이중적 구조를 정교하게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NIH가 2025 회계연도에 약 485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기초 연구를 지원하며, 영국은 NHS의 혁신 의약품 기금을 통해 연간 3억4000만 파운드 규모의 별도 재원을 마련하고 있다.
유럽연합 또한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을 통해 955억 유로 중 상당액을 보건 의료 생태계 뒷받침에 할당하며 약가 관리의 부작용을 상쇄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보완 장치는 산업 규모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가신약개발사업에 2030년까지 총 2조1758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나, 이를 연간 단위로 환산하면 국내 제약산업 전체 R&D 규모인 4조원대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정부 지원이 특정 프로젝트에 집중되는 '선별적' 성격인 데 반해, 약가 인하의 영향은 기업 전반의 현금흐름을 위축시키는 '광범위한' 성격을 띠고 있어 실질적인 대체가 어렵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약가 인하로 절감된 재정을 산업 혁신으로 환류시키는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모든 의약품에 일괄적인 인하를 적용하기보다 혁신성과 필수성에 따라 가격 정책을 세분화하고, 절감된 재정의 일부를 임상이나 글로벌 진출 지원을 위한 별도 계정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재정 안정과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단순한 삭감을 넘어선 정교한 정책적 안목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메디컬투데이 양정의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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